본문 바로가기

MK

‘심장’이라 일컬을 때

 

비유가 내포한 바와 그 표현이 어긋나지 않고 잘 맞물려 전달된다는 전제 하에, 결에 따라 수려하기도 투박하기도 한 제각기 다른 느낌들을 모두 좋아하는 편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종종 접하게 되는 민균이의 비유들은 나름의 근거가 제법 탄탄해서 무척이나 좋아한다. 가령 이런 것처럼.

 

저는 레인보우. 왜냐하면 퓨즈 분들 중에서도 각각의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지신 분들이 많으니까, 레인보우라고 표현을 하고 싶네요.
‘온앤오프하면 무슨 색이냐고요? 저는 이제 빨강과 파랑! 두 가지가 공존한다고 생각합니다. 열정적인 빨강과 시원하고 재미있는 블루.

(201023 다락방)

 

들을 당시에 이야기를 곰곰 되새겨보다가, 하나의 성격으로 규정하기보다 이모저모 다양하게 바라보려는 특유의 관점이 드러나는 게 참 좋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단색으로 이야기하는 게 반드시 나쁘다는 뜻은 아니고그것도 그것대로의 장점이 또 있고 쓰다보면 가치 중심적으로 읽힐까봐 사족을 달곤 하는 사람…

 

아무튼 보면 꼭 이유를 매번 말하지는 않더라도 - 그러기엔 이 친구는 ‘무엇무엇 때문에’라고 친절히 단서를 다는 말버릇이 있지만 - 분명 자기만의 기준이 있다. 결국엔 ‘단지 제가 좋아서’ 정도로 간단히 대답 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궁금해서 더 묻고 싶을 때도 있지만 어쨌든 대부분은 단답으로 말하더라도 그저 납득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_

 

최근의 일본 잡지 인터뷰에서 ‘나에게 온앤오프란’ 무엇인지 질문받았을 때,

 

심장이다! 지금도 뛰고 있기 때문에

 

라고 자필로 답한 것을 읽고선 중의적 표현이 귀여워 먼저 웃었다. 심장이니까 뛰고 있고, 연습부터 활동까지 열심히 뛰고 있다는 뜻 모두로 읽혀서. 그러고는 꽤나 답게 명쾌하다고 생각했다, 신체에서 핵심되는 부위로 단번에 비유해낸 것이.

 

그런데 얼마 후 알고리즘으로 보게 된 어느 팬분의 편집 영상에서도 ‘심장’이라 비유하는 너를 봤다. 같은 멤버 형 이션을 가리킨 표현이었다. 이유를 듣고 싶어 원본 영상을 찾아보았더니 ‘이 멤버는 나에게 이런 존재’라는 릴레이 토크 중이던 상황.

 

저는 길게 표현하지 않고 한 단어로 표현할게요. 저는 (이션이 형이) 심장이라고 생각을 해요. 왜냐면은, 심장은 같이 뛰어야 하잖아요. 혈액순환이 되어야 해요. 누구 하나 멈추게 되면은 심장도 멈추는, 끝나는 거예요. 게임 오버. 그래서 아무래도 같이, 앞으로도 뛰어갈 동반자라고 생각해서. 의미가 깊죠? 이래뵈도 생각이 좀 있거든요.

…뿌듯한 아가뀬이가 귀여워
여튼 앞으로 같이 10년, 100년 함께 같이 갈 동반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데뷔 1주년 기념 브이라이브)

 

그리곤 너의 비유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동반자였구나. 같이 뛴다는 의미라면, 그렇다면 비단 멤버 한 사람에게만 갖는 생각은 아닐 수도 있겠다. 네 세상에서 너는 멤버들에게 그리고 멤버들은 너에게 - 서로가 곧 심장이구나.

다시 또 꽤나 답다고 생각했다. 너는 그리도 덜컥 생명의 중심 되는 자리를 내어줄 만큼 모두가 소중한 거지.

 

오랫동안 궁금했던 한 문학평론가의 산문집을 요즘에야 용기내어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굳이 용기까지 내야 했던 건, 글이 쓰일 당시 온 사회가 세월호 참사의 후유증을 앓던 시기였고 문학계도 독자인 나도 그러했으므로. 그러나 그만 서두부터 다시금 까무러치고 말았다. 아가멤논의 딜레마를 해석틀 삼아 영화 〈킬링 디어〉에 담긴 복수와 비탄의 서사를 해설하는 글이었는데, 평론가는 다름 아닌 영화 첫 장면에 등장하는 심장을 들며 글을 맺고 있질 않았겠어.

머릿속 한켠에 뭉근히 자리한 생각들 앞에 장난처럼 나타난 우연에 눈을 떼지 못한 채 더욱 빠르게 문장을 읽어내렸다. 종종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민균이 커버했던 노래들이 꼭 하나씩 귀를 잡아끄는 통에 반가워하면서도 당황하곤 하는데, 그런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심장이다. 언제나 제 주인만을 위해 뛰고, 계속 뛰기 위해서만 뛴다. 타인의 몸속에서 뛸 수 없고 타인의 슬픔 때문에 멈추지도 않는다. 슬픔에 대해서라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에게 한계다. 그러나 이 한계를 인정하되 긍정하지는 못하겠다. …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나는 평론가의 입을 빌려 너의 비유를 곱씹어보았다.

서로가 수는 없으니 다만 하나로서 뛸 뿐이겠지. 서로를 향해 무한히 수렴하면서 그저 힘껏 함께함이 너의 사랑이라면. 그렇게 묵묵히 곁을 지키며 뛰는 것이 너라는 심장이라면.

 

어느 시인이 들었던 핀잔처럼** 행여 누군가가 그런 순진한 희망이 끼일 자리가 있느냐 묻는다면, 그 비릿한 냉소가 코를 찌르기 전 나 역시 네 앞을 나서며 물으리라. 옳아, 당신에겐 무슨 다른 방법이 있는지.

 

다만 민균아, 너는 걱정하는 걸 원치 않겠지만 열심인 모습에 기쁘면서도 문득문득 마음이 쓰이고 만다. 무엇을 마주하든 척척 살아가는 너라서 안심하려다가도 끝끝내 뒤를 돌아보고 마는 건, 아파도 티나지 않는 고양이들과 살아오며 습관처럼 노파심을 달고 지내는 나라서.

 

 

*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p.28

** 허수경, 『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 p.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