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ONF

우리의 이름을 부를 때


아래에서 나름 이어지는 글이다. 초안이 날아가 있어서... 이렇게 오랜 뒤에 쓰리라고는 생각 못했지만...

 

내기준 재미있으 승준 모먼트

생전 안 그럴 것 같이 생긴 애가 한번씩 툭툭 던지는 말들이 이 할미는 너무 재미있어서 홀홀홀 ^m^ 하나씩 주섬주섬 이삭줍듯 주워모으고 있었다. 나만의 제이어스 재미있으 화법 모음집 홀홀홀

n6sp.tistory.com




... 다름 아닌 승준의 오디션 이야기 때문이었다.
(200306 퓨나시, 16:54부터)
웹에서 재생하기 하면 바로 나옵니다...

 

(전략, 17:24부터) … 어떤 길거리 캐스팅을 당해서 거기 오디션을 봤는데 붙게 됐어요. 그때 노래를 되게 못 했는데. 팝송 한 번 카피하려면 한 달 걸리구. 춤으로 붙었나봐요. 아니면 잘생겨서? (웃음)
거기서 보컬학원도 보내주고… 고1 때였는데 그때 보컬학원에서 효진이를 또 만난 거죠, 잠깐.
그런데 한 두 달인가, 만에 짤렸어요. 그래서 그때 엄청 낙심했죠. 열심히 했는데. 청소도 열심히 했는데. 일단 뭘 못 하니까 ‘청소라도 열심히 하자. 어른들한테 잘이라도 보이자 해서 말 잘 듣고 그랬었죠. 그러다가, … (후략)


… 귀를 의심했다. 청소라도 열심히 해서, 어른들께 잘 보이기라도 하자고 다짐했다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열일곱 살에?

연령주의ageism로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아무래도 자꾸만 내 열일곱 시절을 함께 돌이켜보게 되는 것이다. 자기가 얻고자 하는 바를 위해서, 계속 배우고 싶으니까 궂은일도 마다않고 어른들 말씀도 잘 듣고 예쁨보여서 어떻게든 메워보자고 다짐했다고? 그 어렸을 애가?…
이런 판단을 대체 어떻게 한 거야. 한동안 이 이야기 하나로 정신이 얼얼했었다. 야무지고 대단하다. 좋은 충격이었다.

_


승준이는 정말 주변을 잘 챙긴다. 다 열거하기도 어렵지만… 그리고 목록을 한번 날리기도 했지만… 혼자서 눈여겨보았던 점들을 이야기해보자면 이렇다.

프로그램을 마무리할 때나 행사에서 끝인사를 할 때마다 승준이는 언제나 그 날 같이 했던 사람들을 멘트에서 꼭 언급하고 넘어가는 모습이 있었다. 주최 측이나 행사명을 꼭 한 번씩 더 언급한다든가, 진행 MC가 계셨으면 이 분 덕분에 더욱 즐거웠다든가 오랜만에 뵈어서 반가웠다든가, 특별할 게 없으면 퓨즈들과 함께여서 좋았다는 인사라도 잊지 않는다.
가볍게는 사회생활에 능한 모습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크레딧을 잊지 않는 자세다. 무대와 아티스트가 프론트엔드라면 큐시트에 따라 움직이는 백엔드를, 프로그램 앞에 드러나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을 기억한다. 모든 멤버들이 당연히 다 같은 마음이겠지만 이걸 입밖으로 내어 인사해주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승준에게서 더 자주 보인다. 스태프라면, 행사 주최자라면 이런 아티스트가 고맙지 않을 수 있을까? 나였어도 펩시콘 때처럼 기념품 티셔츠 냉큼 안겨주지 않고는 못 배기지.

베를린 여행로그에서도 비슷한 순간이 나온다. 이번 여행의 소회를 조잘조잘 기쁘게 나누다가 문득, 이게 다 효진이랑 함께라서 그런가?” 하고 애살있는 한마디를 슬쩍 던진다. 그러고는 “너도 첫 여행을 나랑 함께한 거잖아, 너무 좋지?! 한다.
아니 하 잠시만…… 사람이 우째 이래 사랑스러울 수가 있노………

0123


또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믹스나인을 뒤늦게 복습하면서 발견했던 작은 순간도 있다.
MC의 질문에 팀명의 의미를 설명하는 장면인데, 사실 ‘이 단어와 이 단어를 따서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라는 설명으로 충분했을지도 모를 일을 리더였던 승준은 ‘누가’ 이 아이디어를 냈고 ‘누가’ 이걸 발전시켰는지 꼭꼭 말하면서, 팀명을 만드는 데 참여했던 팀원들의 이름을 언급한다.

0123

팀을 대표하고 있지만 모두가 참여하고 있다는 내색을 꼭 한다. 자신과 시간을 함께해준 이들에게 애정과 감사를 표한다.
제이-어스, 승준과 우리들. 참 이름 같은 행실이라 생각했다.

_


제이어스라는 이름을 검색해봤다면 검색 결과로 승준과 더불어 동명의 사역단체가 나온 경험이 있을 것이다. (멜로망스 김민석 씨가 멤버였다던 단체다) 이분들 단체는 성경 구절 중 마태복음 28장 20절, “Jesus is with us를 줄여 부르는 명칭이었다. 추측이지만 승준이도 천주교 집안이니 이 구절을 아주 모르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신보 소식을 한 번씩 확인하다가, 어느 날 또 좋아하던 음악가의 뜻깊은 음반 소식에 반가운 마음으로 앨범 정보를 읽어내려가던 중 인용된 성경 구절에 눈길이 멈추었다. 마음이 쿵 울리면서도, 왜인지 이번에도 승준이 떠오르고 있던 것이다.

사람이란 한낱 숨결과도 같은 것
그의 날들은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습니다.
(시편 144:4)


불교에서 접할 법한 무상함이 아닌가. 무교라 성경을 잘 모르다보니 내용을 조금 더 찾아봤다. 양치기였던 다윗은 신심으로 골리앗을 물리친 이후 이스라엘의 장군으로 활약하게 되는데, 시편 144장은 이 다윗이 다시금 큰 전쟁을 앞둔 밤 하느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기록이라 전해진다. 인간인 자신은 숨결과도 같이 부질없고 시간은 그림자처럼 덧없이 지나니,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쓰임이 다한다면 그것으로 좋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나는 승준의 존재감이 어쩌면 이러한 성격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승준이 보이는 배려는 살랑이는 바람 같다는 생각을 오래 품고 있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면서 남을 높이고 편안을 끊임없이 살피는 사람. 그러면서 시간을 결코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사람. 일생의 많은 날 중 하루일지라도, 그렇게 그림자처럼 무심히 흐르는 시간일지라도, 일생을 이루는 하루이기에 우리로서 함께했음을 기억하고 더더욱 그림자 뒤에 숨을 뻔한 이름들을 한 번 더 불러주려는 마음.

J와 US가 나란히 놓인 네 이름에,
그 마음이 그렇게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