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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

사랑에 안도하기

 


너를 좋아하고 나서부터 마음을 드러내는 모양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나의 경우 누구에게나 애살있지도 않고 순발력도 없어 타인과 부딪다 어긋나고 다칠 것을 자주 두려워했다. 그럼에도 마음은 주고받고 싶어서, 그러기 위한 도구 가운데 그나마 능숙했던 것이 글이었다. 누구든 읽고 쓸 수 있으니 접근이 쉬우면서도 내밀하고 안전하게 생각과 마음을 전할 수 있다. 동시에 언어라는 틀은 일정하여 보수적이고, 상황의 참여자보다 관찰자나 기록자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글을 선택한 동시에 글로 도피해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전후좌우 안전거리 확보, 반경 백 미터 이내 대상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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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대하고 글을 다듬고 쓰다 보면 말 속에 켜켜이 쌓인 어떤 결들을 발견하기 마련이었다. 결을 마주하는 마음은 얇은 종이에도 쉬이 베이는 연약한 피부와도 같아서 끊임없이 - 꽤 오래 전부터, 어쩌면 지금도 - 적당히 흘려보내거나 스스로를 달래고 다스리는 연습을 멈추어서는 안 되었다.

그런 내가 민균이의 투박한 말씨를 편안하게 느끼는 건 어쩌면 민균이가 행동에서 비롯한 말을 자아내는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음료수를 찾을 때면, 혀를 같이 만족시키고자 단맛을 우선할 수도 있고 목넘기는 기분을 위해 탄산을 고를 수도 있겠고 빠른 갈증해소를 위해 이온음료를 찾을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민균이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유달리 깨끗하고 맑은 물을 들이켜는 기분이 된다. 있는 그대로 맑아서 편하다. 경험과 기억을 언어화시켰을 뿐인 말은 어딘가로 숨지도 무언가를 숨기지도 않는다. 부풀리지도 젠체도 않는다. 나는 그 흔한 사레질 한 번 없이 네 이야기를, 목소리를 듣는다. 

 

생각과 감정도 마찬가지다. 마음닿는 그대로 나눠주는 그대로, 또렷하고 충분하게 다 전해진다. 쑥스러우면 그런대로, 기쁘면 그런대로, 지치고 피곤하면 또 그런대로. 그러면서도 결코 너를 다 소진하지 않는다. 그러지 않기 위해 내심 안간힘을 쓰고 있다거나 기민하게 조절하고 있는 듯 보이지도 않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네가 너여서 안도하고 있음을 깨달을 때마다 새삼스럽다. 어쩌면 이대로 평생 너를 궁금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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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네게는 꾸준히 오래 곁에 있어주는 일이 더 의미가 크다는 말을 들었을 때, 위안이 되었다. 내 마음이 너무 작은가 주눅들지 않아도 되고, 너무 큰가 조심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이다. 마음의 크기에 지레 겁먹지 않아도 된다. 다만 내가 줄 수 있는 사랑, 할 수 있는 표현을 주면 그걸로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달 차 퓨즈부터 4년 차 퓨즈까지 출석을 부르며 모두모두 고마워하던 모습이 불현듯 떠올라 웃음이 났다.

내가, 우리가 너의 전부라며 덥썩 품에 안아버리는 너를, 모든 형태의 사랑을 품을 줄 아는 너를 쉬이 우습게 여기는 이가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너는 내 생에 가장 의심 없을 사랑, 그러니

나도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어여쁜 꽃노래와 자장가를 곁에서 영영 불러줄게.

 

사랑한다는 말에 우주의 별보다 많은 빛깔을 담아 건넬 수 있어 다행이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길. 언제나 고마운, 민균아. 나의 전부야.